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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야기

빵의 역사

by 유에베 2022. 3. 19.

빵의 역사

빵은 다른 어떠한 음식물보다도 인간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식생활에서 주요 식품 노릇을 해왔고, 지금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즐겨 먹고 있는 음식입니다. 기독교에서도 빵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빵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양한 빵의 기원과 역사

밀가루와 물의 반죽에서 출발한 빵은 세계 곳곳에서 정말 다양한 크기와 종류로 발전해갔습니다. 난(nan, 이란-중앙아시아-중국(서부)-인도)과 차파티(chapatti, 남아시아 지역에서 먹는 둥글넓적한 빵)가 있고, 바게트(baguette, 프랑스의 길쭉하고 딱딱한 빵)와 브리오슈(brioche, 계란과 버터를 넣어 작게 만든 빵)등도 있습니다.

인간의 위는 풀을 먹도록 적응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풀을 제대로 소화해내기에는 너무 작고, 커다란 뇌는 풀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렇기에, 밀, 쌀, 옥수수 등 다양한 형태의 풀로 우리가 매일 먹는 주식을 만들어왔습니다. 

생물학자인 리처드 랭햄은 요리가 인간 진화의 바탕이 된 주요 추동력 중 하나로서 뇌의 크기를 키울 수 있게 했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음식을 조리하면 날것일 때에 비해서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요리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식품 가공 역시 우리와 함께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곡물을 먹는 모든 문화권에서는 낟알을 어떤 식으로든 갈아서 그 딱딱한 외피를 벗겨내 그 안에 들어있는 녹말 덩어리를 드러내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화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가공식품의 맨 처음 형태 가운데 하나가 낟알을 갈고 조리해서 만든 '빵'입니다.

낟알을 가는 데 쓰이는 돌, 즉 맷돌 같은 형태의 기구가 고대 유적지 발굴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빵을 만들기 위해 가공했던 증거인 것입니다. 유럽의 서로 다른 유적지에서 발굴된 맷돌들의 닳은 표면에 대해 화학분석을 해보니, 갈려 만들어진 미세한 가루의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탄소 측정법으로 3만 년 전의 것임을 밝혀내었고, 우리는 빵을 만든 초기의 직접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리에 관한 리처드 랭햄의 이론이 맞다면 빵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더 멀리 호모 에렉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론이 있지만, 어떤 이론에서는 1만 2800년 전부터 시작된 신드리아스기 때 갑자기 기온이 낮아지면서 구할 수 있는 식량이 대폭 줄어들어 안정적인 식량 수급 시스템을 도입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곡물을 직접 경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농경생활이 시작되자 식량 생산이 늘어나 인구가 늘게 되었고, 날씨가 좋아진 후에도 수렵, 채집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경작한 식물의 씨앗을 보관하고, 최종 산품인 빵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낟알을 종자용으로 보관했을 것입니다. 이 초기 농부들이 만든 빵의 형태는 아마도 지금 서아시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납작 빵(flatbread)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호모를 넣어 빵을 구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발생적인 효모 분자가 반죽에 우연히 들어간 결과로 일어난 혁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발견된 적이 없어서 지금은 추측할 뿐입니다. 그러나 효모를 넣은 빵은 6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서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닙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했던 우루크에서는 서기들이 점토판에 부호를 새겨 잉여 생산을 관리하는 회계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많은 양의 밀을 표시하는 부호도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알려진 최초의 문자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우루크와 다른 도시들에서 처음 나타난 전문 기술자의 유형은 제빵사, 특히 효모를 넣은 빵을 굽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대의 제빵사들은 전날의 빵 반죽을 조금 떼어놓았다가 새 반죽에 넣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제빵의 누룩반죽 방식에서 쓰는 발효제와 비슷한 방법으로 거기에 효모를 넣는 것입니다. 아니면 맥주 양조에서 만들어지는 효모를 이용해 그것을 반죽에 섞었을 것입니다. 제빵과 양조 사이의 관계는 매우 오랜 것이어서, 처음으로 배양된 빵 효모를 구할 수 있게 된 19세기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제빵의 역사를 통해 빵집이 양조장 옆에 위치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효모를 이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빵

빵은 또한 기독교의 성찬 의식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고, 마지막 만찬 도중 예수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준 순간과 관련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성사(聖事)를 지키는 문제가 1054년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사이의 '대분열'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양측은 성찬에서 누룩을 넣은 빵을 쓰느냐 넣지 않은 빵을 쓰느냐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분쟁은 예수가 마지막 만찬에서 어떤 빵을 먹었느냐에 대해 신약성서에 있는 설명이 분명하지 않았기에 생겨났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동방 교회에서 발전한 전통은 누룩을 넣은 빵을 사용하는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서방의 전통은 어떤 빵을 쓰든 용납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로마 교황 사이의 이견이 있었고, 이로 인해 양쪽은 잇달아 상대를 파문했습니다. 이 문제는 거의 천 년이 지난 1965년이 되어서야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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