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문명 그리고 법
맥주는 사실 아주 물기가 많은 빵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빵과 동일한 기본 성분으로 만들어졌으며, 효모의 발효를 수반합니다. 물론 그 발효의 목적은 다릅니다. 하나는 빵을 부풀게 하는 것이고, 맥주의 경우는 설탕을 알코올로 변환시키는 과정입니다. 세계 각지의 여러 문화권에서 맥주는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구성요소였습니다. 효율적인 상하수도 시스템이 개발되기 이전에 깨끗하고 안전한 음료수를 마실 수 있도록 했으며, 사람들끼리 만나는 이유나 구실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문명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맥주와 문명, 그리고 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맥주와 문명
기원전 55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지금의 이라크에 있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땅) 남부 지역인 수메르에서는 두 강 연안의 비옥한 땅을 경작해서 얻어낸 잉여 곡물을 관개시스템의 발전에 의해 더욱 늘려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집단 정착지에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직업도 더욱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었습니다. 제빵사와 양조업자도 있었고, 도시의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도시 행정도 발전했습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생산된 여러 가지 농산물과 교역품들을 기록하기 위해 행정가들은 회계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이 시스템에 따라 점토판 위에 부호를 새겨 세금 수입과 사람들이 한 일에 대해 지급하는 급료를 기록했는데, 그 급료는 보통 빵과 맥주 형태로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맥주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부호는 맥주를 양조한 뒤 그것을 보관하는 데 사용했던 형태의 커다란 단지 모양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의 수많은 그림들이 커다란 단지 주위에 둘러앉아 긴 빨대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맥주를 마시는 것이 사교활동이었던 것입니다. 쓰기가 자리를 잡게 되자 수메르의 서기들은 단순한 업무 기록 외에 다른 일들도 광범위하게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기원전 1800년 무렵의 맥주 만드는 법에 대한 기록도 있는데, 이는 수메르의 맥주의 여신 닌카시(Ninkasi)에게 바치는 노래 형식이었습니다. <닌카시에게 바치는 찬가>로 알려진 이 노래는 여신이 꿀과 대추를 넣어 맛을 더한 바피르(bappir)라는 일종의 보리빵을 엿기름과 물이 담긴 통에 넣고, 맥주가 익은 뒤 걸러내어 보관용 단지에 넣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노래는 여신이 자신들에게 맥주를 주고 즐거운 식사와 행복한 음식을 주셨다고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수메르인들의 맥주 마시는 문화는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이집트인들에게도 알려져 그들 문화에서도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를 건설한 일꾼들은 이집트에서 두 가지 주식이었던 빵과 맥주를 지급받았는데, 한 사람당 빵 세 덩이와 2리터(4 파인트)들이 맥주 두 단지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여름에는 건설 공사에 동원되었으며, 일 년 중 나머지 기간에는 홍수가 물러간 비옥한 땅에서 밀과 보리를 경작하고 수확량에 비례해서 파라오에게 세금을 바쳤습니다. 그 세금이 다시 그들이 파라오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빵과 맥주로 지급된 것입니다.
맥주와 법
알려진 성문법 가운데 최초의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졌고, 이것은 문명이 발달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바빌로니아 왕 함무라비(기원전 1810경~1750경)는 독재적인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법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맥주를 만들고 파는 일 또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함무라비 법전은 '스텔레'라는 돌기둥에 새겨진 것인데, 여기 나열된 여러 가지 법들 가운데 양조업과 여관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들어있습니다. 함무라비는 그들이 맥주에 매기는 값을 감시하는 것을 군주인 자신의 중요한 역할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법전에 따르면 맥주는 스무 가지의 서로 다른 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며, 이 가운데 여덟 가지는 순전히 보리로만 만들었습니다. 또한 밀로 만든 맥주, 혼합곡으로 만든 맥주, 검은 맥주, 이집트 수출용으로 특별히 양조한 맥주도 있었습니다. 거래의 모든 단계를 국가에서 통제했던 셈이었는데, 아마도 세금 징수의 편의를 위한 것도 있었겠지만 폭리나 사기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바빌로니아의 일부 여관 주인들이 저급 맥주를 부풀린 가격으로 팔려고 하자, 함무라비가 그런 행위를 근절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함무라비가 맥주 생산과 판매를 통제하는 법을 처음으로 만들었지만, 그런 법은 그 뒤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1516년의 '라인하이츠게보트'입니다. '바이에른 양조 순수화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바이에른의 맥주는 오직 보리 엿기름과 홉, 그리고 물만으로 만들도록 보장하기 위한 규정들을 나열했습니다. 본래의 법은 함무라비 법전에서 그랬듯이 바이에른에서 맥주에 매기는 값도 규제했으며, 법 위반에 대한 벌금도 정했습니다. 그 목적은 밀과 호밀을 맥주보다는 빵 만드는 데 쓰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바이에른 맥주의 품질에 대한 징표로 여겨지게 되어 다른 독일계 국가들에서도 이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전역의 많은 양조업자들이 아직도 라인하이츠게보트를 고수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강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1988년 유럽연합 법에 저촉돼 폐지되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팔리는 맥주의 가장 일반적인 유형은 라거(lager)입니다. '저장하다'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 '라게른(lagern)'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유형의 맥주는 여름 동안 맥주를 시원하게 보관하기 위해 동굴에 저장하던 바이에른의 관행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통의 아래쪽에서 온도가 낮을 때 발효된 것이 높은 온도의 꼭대기에서 발효된 것에 비해 특히 깨끗한 맥주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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