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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야기

국수의 역사

by 유에베 2022. 3. 21.

국수의 역사

국수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보면, 밀가루에 물을 섞어 만든 반죽을 가닥 형태로 만들어 삶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 다양한 국수의 형태가 존재하므로 어떤 것이 국수라고 정확하게 규정짓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 밀가루나 쌀가루로 만들지만 그 밖에도 여러 종류의 가루가 사용되며, 그렇게 만든 반죽을 국수로 만드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이번에는 국수 자체의 종류보다는 국수의 종류가 전파되고 이어졌는지 국수의 역사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고대의 국수(국수의 기원)

2005년에 기원전 2000년 무렵의 중국 중부 황허강변의 청동기 시대 유적지 라자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던 고고학자들은 한 집의 바닥에서 뒤집힌 사발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사발 안에는 침전물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국수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형태가 잘 보존되어, 길고 가는 가닥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침전물 때문에 공기가 없는 상태가 형성되어 국수의 부패를 막아주었던 것입니다. 분석해보니 그것은 전체 유적지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두 가지 잡곡의 가루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국수의 탄성을 높여서 늘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 가지를 섞었을 것입니다.

라자에서 나온 4천 년 전의 국수는 오늘날 중국에서 볼 수 있는 라몐과 비슷했습니다. 라몐은 손으로 반죽을 돌리고 접는 방법을 써서 만들며, 반죽 자체의 무게를 이용해 국수를 뽑아냅니다. 이 국수가 라몐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이런 형태의 음식의 기원에 대한 오랜 논쟁은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국수가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져 동쪽으로 전파되었다는 주장도 있었고(비단길로 알려진 옛 교역로를 따라 역방향으로 갔다는 것), 또 아랍 상인들이 처음 만든 뒤 그들이 교역하던 상품들과 함께 중국인들과 이탈리아인들에게 전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자에서 발견된 국수가 매우 이른 시기의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중국 기원설에 확고한 무게가 실리게 되었습니다.

 

파스타의 역사와 의미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기원전 65~기원전 8)가 기원전 1세기에 자신이 라자냐라고 부른 요리에 대해 쓴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묘사한 것이 오늘날의 파스타와 비슷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밀가루 반죽 판으로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스파게티에 비교할만한 파스타의 가닥에 대해 처음 언급된 곳은 12세기 시칠리아였습니다. 그곳은 1071년 노르만인들에게 정복되기 전, 200년 이상 아랍의 한 토후국(土侯國)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랍의 영향이 시칠리아에 미쳐 파스타도 그들이 전했는지에 관해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이 섬에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건조 파스타는 강력한 도시국가들인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중요한 음식이었습니다. 파스타를 이탈리아에 들여온 사람은 베네치아 상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마르코 폴로(1254~1324)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말 비단길을 따라 중국을 여행했고, 여행기를 남겼는데 거기에 국수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을 하던 시기에는 이미 파스타가 이탈리아의 주요 음식이었고, 마카로니 제조업 협회가 홍보전략으로 이를 결부시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497년 프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인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이 알려진 뒤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들어와 '라구 소스'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19세기에 파스타를 만드는 제조 공정이 도입되면서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국민음식이 되었고, 다른 나라로 수출되었습니다. 미국으로의 대량 이민이 이어져, 여러 도시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대규모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파스타와 피자를 파는 식당들이 생겨났습니다. 파스타가 간편하며 유통기한도 길다는 점이 외국에서 인기를 얻는 데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그 인기는 이탈리아인들의 생활방식 및 음식문화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많아지면서 더욱 높아졌습니다. 할리우드 갱 영화에 이탈리아 음식이 많이 나오는 것도 파스타 광고에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1949~)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혼자서 스파게티를 만드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가 더 넓은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왔음을 의미합니다. 하루키는 사교적 행사인 이탈리아인들의 식사에 대한 인식을 등장인물의 외로움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하루키 소설의 등장인물이 스파게티와 비슷한 일본식 우동을 만들고 있었다면 그 효과는 그만큼 없었을 것입니다. 우동은 사교적 행사과 연관이 없고, 혼자서도 많이 먹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이 스파게티를 만들고 있는 것은 그가 일본인이지만 자기 나라에서 외국인 같은 기분이며 사회 주류와 분리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하루키가 자신의 소설에서 어떤 효과를 내기 위해 스파게티를 사용한 것은 문학적인 측면을 넘어서 어떤 음식이 어떻게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지 또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국수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유럽으로 갔고, 거기서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수프나 국이 아니라 소스를 쳐서 국수를 먹는 이탈리아의 방식은 이제 다시 동쪽으로 향해 일본과 이 지역의 다른 나라들로 전해진 것입니다. 이 사이에 국수는 '파스타'라는 이름으로 다른 문화적 상징을 얻은 셈입니다.

 

인스턴트 국수의 역사

국수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가져온 파스타라는 형태로만 미국에 상륙한 것이 아닙니다. 19세기 초 태평양을 건넌 중국인으로부터도 전파되었습니다. 중국인들도 이탈리아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오면서 중국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일부는 식당을 열어 동포들에게 음식을 팔기도 했고, 이를 확장해 온갖 민족이 섞인 미국인들에게 중국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중국인 이민자가 많이 늘어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대체로 영국 식민지 홍콩과 영국 연방의 다른 지역(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로, 이들 지역에도 대규모 중국인 공동체가 있음)에서 왔습니다. 이민 첫 세대 중 상당수는 음식 장사를 했고, 1960년대 이후 중국 음식점과 테이크아웃 업소들이 도시 밖으로 확산되어 이제는 나라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국수는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문화적 경계를 건넜고, 그러는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1958년 일본 회사인 닛신식품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하자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은 국수를 미리 익힌 뒤 급속 튀김을 해서 말린 것인데, 여기에 나중에 뜨거운 물만 부어 다시 수분을 넣어주면 먹을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닛신식품은 그 다음에 컵라면을 출시했는데, 컵라면에 양념까지 미리 들어 있어서 국수를 플라스틱 용기에 넣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즉석(卽席)식품이었습니다. 영국에서 많은 비방을 받은 폿누들(Pot Noodle)이라는 비슷한 제품도 있었습니다. 

인스턴트 국수는 어떤 형태로 팔리는지를 불문하고 거기서 얼마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다양한 문화와 생활방식에 맞추어 변신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국수가 4천 년 전 황허 유역에서부터 오늘날 슈퍼마켓 진열대에 오르도록 내내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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