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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야기

코카콜라의 역사

by 유에베 2022. 3. 25.

코카콜라의 역사

코카콜라는 현재 전 세계 200여 개의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제연합 가입국 수보다 많은 것입니다. 2012년 미얀마가 코카콜라 판매금지를 철폐한 뒤로는 이제 이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쿠바와 북한뿐입니다. 이 두 나라는 미국의 오랜 적대국으로서, 코카콜라와 미국 사이에서 발전되어온 긴밀한 관계를 잘 드러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랑받고 있는 코카콜라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의약품으로 시작했던 코카콜라

코카콜라는 1886년에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약제사 존 팸버턴(John Pemberton, 1831~1888)이 처음 개발했습니다. 원래는 청량음료가 아니라 특허 의약품을 만들려 했다고 합니다. 그는 코카콜라를 만들기 전 해에 포도주, 남아메리카산 코카나무 잎, 서아프리카산 콜라나무 열매, 최음제로 유명한 텍사스산 떨기나무 다미아나 잎 등의 추출물을 섞어 '펨버턴의 프렌치 와인 코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펨버턴은 자신의 특허 의약품 특성 중 하나로 모르핀 중독 치료를 할 수 있는 점을 꼽았습니다. 정확히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그가 만든 의약품이 술, 코카나무 잎에서 나온 코카인, 콜라 열매와 다미아나에서 나온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효과가 있어 보였습니다.

1886년 애틀랜타에서 술의 판매를 제한하는 금주법이 도입되자 펨버턴은 자신의 특허 의약품을 변형시키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포도주 대신 탄산수를 사용하고, 설탕을 추가해서 다른 성분들의 쓴맛을 줄여본 것입니다. 조제법이 완성되자 이제 두 가지 주요 성분의 이름을 따서 '코카콜라'라고 명명하고 이를 농축 시럽으로 약국에 팔았습니다. 당시 약국들은 대부분 소다수 판매점을 두고 탄산수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 하며 팔고 있었으며, 코카콜라의 인기는 높아졌습니다. 1888년 팸버턴이 사망하고 코카콜라의 소유권 문제는 복잡해졌습니다.

이때 애틀랜타의 또 다른 약제사이자 특허 의약품 제조업자인 에이사 캔들러(Asa Candler, 1851~1929)가 등장해서 코카콜라의 지분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또한 전국적인 음료로 변신시키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약이 아닌 음료로 방향을 재정립해 아픈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도록 했습니다. 또한 코카콜라의 원료도 수정했는데, 코카인을 제거하고 코카나무 잎의 다른 추출물만을 남겼습니다. 이후 1899년 병에 넣는 과정을 처리하는 회사와도 거래를 맺고 시럽을 판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게 됩니다. 코카콜라는 약국뿐 아니라 식료품점에서도 판매되었고, 어디서나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후 많은 광고 마케팅과 함께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간 코카콜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지로도 수출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코카콜라

1920년에서 1933년 사이에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코카콜라의 판매는 더욱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금주법이 폐지된 뒤에도 청량음료의 판매는 계속 증가했습니다. 코카콜라는 이미 햄버거나 핫도그와 잘 어울리는 순 미국적인 제품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군대에서도 많이 팔렸습니다. 알코올이 들지 않은 음료라서 모든 계급의 병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미국 군부와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던 당시 코카콜라의 사장 로버트 W. 우드러프(Robert Winship Woodruff, 1889~1985)는 군복을 입은 모든 사람에게 코카콜라 한 병을 5센트에 팔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코카콜라 사는 콜라를 병이 아닌 시럽으로 공급하는 회사의 통상적인 관행에 따라 전 세계의 미군 기지들에 이를 병에 넣는 과정을 처리하는 임시 공장을 만들었으며, 이것이 여의치 않은 곳에는 소다수 판매점을 설치했습니다. 군대가 가는 곳을 어디나 따라다니는 코카콜라 직원들에게는 '기술 참관인'의 신분이 주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유럽의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드 D. 아이젠하워(1890~1969) 장군도 코카콜라의 가치를 인식한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코카콜라의 기술 참관인들은 노르망디 상륙을 위한 병력 증강이 진행 중일 때 미군들과 함께 영국에 도착했고, 그들이 유럽을 가로질러 가며 싸울 때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미군의 철수와 전후 재건을 통해 전쟁으로 피폐해진 많은 나라들의 경제에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콜라를 병에 넣는 과정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었던 공장들은 민간 소유로 전환되었고, 회사 시설을 세계 각 지역의 새로운 시장 개척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카콜라 사가 미군과 긴밀한 관계에 있고 전 세계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보는 관점에 따라 코카콜라는 자유 세계의 상징 혹은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제국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이미지로 코카콜라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철의 장막 뒤의 어느 다른 국가에서도 자리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 코카콜라는 다른 서방의 브랜드나 소비상품들과 함께 억압의 상징에서 자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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